이수영의 감성시대 시작 멘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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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바뀔 때쯤엔 철 지난 옷 챙기다가
맞어! 이 옷 있는데 한번도 안입었네~ 그럴때 있죠?
사놓기만 하고 안 읽었던 책 발견하고선
아 이렇게 재밋는걸 왜 안 읽었지? 그럴 때도 있어요.
정말로 다급한 상황이 있을 때,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친구를 보면서,
이렇게 좋은 친구를 내가 여태 몰랐구나.. 하고 깨닫기도 합니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혹은 깜빡 잊고
그렇게 사는 것 같아요
새로운 걸 매일 발견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 없이 흥미 진진 하겠죠?
지금 스튜디오 안에는 아주 알싸한 페퍼민트 향이,
옥주현씨가 피워놓고 간 그 양초 냄새가
저를 너무나 즐겁게 해 주네요
여러분이 모르는 사이에, 이수영의 감성시대도 벌써 바짝 곁에 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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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가장 외로움을 많이 타는 법이다..
다른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후..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 걱정할 곳이 없는 곳에 가서 쉬다 왔으면 좋겠다..
but I can’t do that..
의미없는 걸음..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또 한 발자국 내딛는다
Diary
감성시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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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술래잡기를 하다가 혼자 남은 경험이 있으세요?
음.. 꼭꼭 숨어있다가 결국 혼자 남게 된 적요..
왜 이렇게 못찾지? 하고 살짝 나와보면 애들이 없어요..
어느새 모두 자기네 집으로 돌아가고 하늘은 어두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후회를 하죠.
“좀 일찍 나올걸..”
그런 비슷한 느낌, 다 커서도 가끔 느껴요.
사람들이 걱정해 주는것도 귀찮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꼭꼭 숨어요, 아무도 모르게.
어느순간 보면.. 혼자가 되어있죠. 아무도 나에게 신경써주지 않고..
사람들은요, 금방 눈에 띄지 않는걸 찾아서까지.. 챙기진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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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다..
나도 많이 공감이 되는 부분이고, 실제로 그랬던 적이 많았다
괜히 혼자 힘든 척 하며, 모든 사람의 관심을 뿌리치고 내 속 깊이 숨어 버렸던 적..
그러다가 살그머니 고개를 내밀어 보면, 나에게 관심을 보여줬던 ‘척’ 했던 사람들은
어느새 제 할 일을 하고 있고 나에게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 모습..
그 순간 느끼는 외로움..
그때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 세상이라는 곳은 나 홀로 살아가는 곳이구나..
안타깝지만..
그것은 점점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까지, 찾아서 챙겨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또 상처받고..
상처받음으로 인해 독해지고..
독해짐으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그러면서 점점 나의 영혼이 죽어간다..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지 않게 되고,
나의 이익을 따져 모든 일을 행동하게 되고,
다른 이들을 믿지 않는다..
Short Thinking
한국 갔을때 임행심 전도사님이 꼭 읽으라면서 사줬던 책이다
도덕경은 노자가 자신의 깨달음을 기술한 책으로서
‘경전’ 이라고 보다는 ‘교훈서’ 에 가깝다
도교의 사람들은 이 책에 있는 내용을 잘못 해석해서 봉변(?) 을 당하고 있다지만
도교와 도가 사상은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노자는 ‘함이 없음’ 즉 무위의 가르침을 강조하는데,
이는 기독교와의 가르침과도 어느정도 맞아 떨어진다고 할수있다
‘드러남이 없는’ 정치를 가장 이상으로 꼽는 노자의 사상은
동양의 사상 중, 예수님의 가르침과 가장 비슷한 사상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한절 한절 정말 심오한 뜻이 담겨 있어서, 생각하면서 읽느라
시간이 좀 오래 걸렸던 것 같다.
또한, 시간에 쫓기면서 대충대충 읽고만 만 부분들도 많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훗날 마음을 비우고 한장한장 진지하게 숙고하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지만..
(풀이를 한 오강남 교수님이 종교학 교수님이라서 그런지
여러가지 종교에 대해서 많이 언급 하신거 같다)
이 도덕경을 읽으니 또다른 동양 사상가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음에 구할 수 있으면 논어와 맹자, 장자 등을 구해서 읽어 봐야 겠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숙고하게 하는,
이름 값 하는 동양의 명서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Reviews
도덕경을 읽다가 와닫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인용하겠다
도덕경 49장 중
선한 사람에게 나도 선으로 대하지만,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선으로 대합니다.
그리하여 선이 이루어집니다.
신의 있는 사람에게 나도 신의로 대하지만,
신의 없는 사람에게도 신의로 대합니다.
그리하여 신의가 이루어집니다.
얼마나 옳은 말인가!
나는 이제껏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리고 선하다고 생각해 왔으면서도,
선한 사람에게는 선으로, 악한 사람에게는 악으로 갚으면서
나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해 왔다니..
“그리하여 선이 이루어집니다”
이 구절이 정말 절묘하다
선하다는 그 뜻은, 상대방이 누구이든지 간에 선하다는 말이다.
‘선’ 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 내가 친절히 대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내게 사기를 쳤다고 해서 그에게 친절하지 않게 대하면
어찌 자신을 두고 “친절한 사람” 이라고 일컬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러므로 선인에게도 선으로 갚으시고,
악인에게도 선으로 갚으신다
얼마나 명쾌한가!
만일 악인에게 악으로 갚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선하시다 라는 명제 자체가 모순이 되어버린다…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다
내가 선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Short Thinking